
감독 박찬욱
개봉일 2022년 6월 29일
장르 멜로,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러닝타임 138분
주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박용우
개인 평점 ⭐⭐⭐⭐½ 4.5 / 5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처음부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사건의 용의자가 된 여자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수사보다 두 사람의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의심하고 있는지, 누가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인지조차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영화라기보다, 보고 난 뒤 장면과 대사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특히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편집, 그리고 박해일과 탕웨이의 절제된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겉으로는 차분한데 그 안에서는 계속 감정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 수사로 시작된 관계
해준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사건에 몰입하는 형사입니다.
그런 그가 산에서 발생한 추락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게 됩니다.
서래는 일반적인 영화 속 용의자와는 조금 다릅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합니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중국인이라는 설정도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면서도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가 재미있어집니다.
수사를 위해 바라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이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서래 역시 해준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의 관심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생깁니다.
둘의 관계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처럼 빠르게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관찰하고 의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사랑과 의심이 완전히 반대되는 감정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궁금해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 의심인지 사랑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두 사람의 감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합니다.
그런데 그 의심이 점점 관심으로 바뀌고, 관심은 다시 감정으로 변합니다.
문제는 해준이 형사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수사해야 하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에는 처음부터 불안함이 깔려 있습니다.
서래 역시 해준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쉽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끌리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관객 역시 계속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서래는 정말 해준을 사랑하는 것일까.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그녀를 향한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애매함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로맨스 영화에서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주지만,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 시작되었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를 오랫동안 보여줍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감정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미장센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대사만 따라가서는 영화의 모든 것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카메라의 위치와 인물의 시선, 공간의 배치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해준이 서래를 바라보는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그녀를 관찰하던 시선이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바뀝니다.
그 변화가 대사로 설명되지 않아도 화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또한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거리감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고, 한 사람이 바라보는 장면과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런 연출 때문에 영화 전체가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산이라는 공간도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할 때마다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특히 바다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에는 사건의 배경이었던 공간이 결국 두 사람의 감정과 연결되면서 영화 전체의 여운을 만들어냅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래서 줄거리만 정리하면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는 영화입니다.
장면과 표정, 공간과 시선을 함께 봐야 영화가 가진 감정이 제대로 전달됩니다.
✦ 사랑은 왜 때로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남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입니다.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인하지 못한 채 관계가 흘러가고,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계속 쌓입니다.
특히 서래라는 인물은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해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말하기보다 행동과 시선으로 표현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끝까지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관계라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쓸쓸한 부분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 사실을 굉장히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영화의 분위기는 더욱 쓸쓸해집니다.
처음에는 미스터리 영화처럼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한 편의 사랑 이야기처럼 남습니다.
그런데 흔한 로맨스 영화처럼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감정을 남겨둡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 장면과 두 사람의 관계를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헤어질 결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여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장면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해준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서래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 영화이면서 동시에 미스터리이고, 미스터리이면서 심리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박찬욱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명확한 말로 설명하기보다 화면과 침묵,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영화의 빈 공간을 자신의 감정으로 채우게 됩니다.
《헤어질 결심》은 쉽게 소비되는 로맨스 영화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게 감정을 설명해주는 작품도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보고 지나치기보다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수사와 사랑, 의심과 믿음, 가까워짐과 이별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얽혀 있습니다.
특히 박해일과 탕웨이의 절제된 연기는 이 복잡한 감정을 과하지 않게 전달합니다.
개인 평점은 ⭐⭐⭐⭐½ 4.5 / 5입니다.
화려한 로맨스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 사랑 이야기, 장면 하나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헤어질 결심》은 한 번쯤 다시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