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빔 벤더스
개봉일 2024년 7월 3일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4분
주연 야쿠쇼 코지, 나카노 아리사, 아소 타다노부, 에모토 토키오
개인 평점 ⭐⭐⭐⭐⭐ 4.5 / 5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하며 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더 좋은 집, 더 나은 직장, 더 많은 돈, 조금 더 특별한 삶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하루가 생각보다 충분히 괜찮은 하루라면 어떨까요.
《퍼펙트 데이즈》는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에서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이면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일을 마친 뒤 목욕탕에 들렀다가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매일 비슷한 하루가 반복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평소 너무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순간, 오래된 음악 한 곡,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대화처럼 평범해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이 영화의 중심에 놓입니다.
그래서 《퍼펙트 데이즈》는 무엇을 이루는 삶보다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 하지만 똑같은 하루는 아닙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입니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침구를 정리하고, 세면을 하고,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차 안에서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고, 도쿄 곳곳의 공중화장실을 찾아 청소합니다.
일을 마치면 목욕을 하고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처음만 보면 너무 단순한 삶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두고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 단순함이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히라야마는 자신의 일을 대충 하지 않습니다.
화장실의 작은 틈까지 살펴보고, 손이 닿기 어려운 곳을 정성스럽게 닦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공간이지만 히라야마에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일의 일부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직업의 이름이나 사회적인 위치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영화는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을 단조롭게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더라도 날씨가 다르고, 햇빛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릅니다.
같은 나무를 바라보더라도 그날의 빛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히라야마가 틈틈이 찍어두는 나무 사진도 그런 그의 시선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나무 한 그루가 히라야마에게는 하루를 기억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면이 됩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도 사실은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너무 익숙해서 알아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퍼펙트 데이즈》가 보여주는 일상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의 단단함이 있습니다.
★히라야마가 사랑하는 것들
히라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좋아합니다.
아침마다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음악이 끝나면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낡고 불편한 방식일 수 있지만 히라야마에게는 그 시간이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처럼 보입니다.
책을 읽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그가 읽는 책들은 최신 베스트셀러가 아닙니다.
오래된 책을 한 권씩 골라 읽고, 책을 다 읽으면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그의 집에는 화려한 물건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고, 그 안에서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생활을 만들어갑니다.
특히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입니다.
히라야마는 잠시 멈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카메라로 기록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코모레비’라는 일본어 표현과 연결해 보여줍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아주 짧은 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같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히라야마는 그 순간을 바라봅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삶도 결국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하루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햇빛도, 오늘 들은 음악도, 오늘 만난 사람도 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라야마는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자신의 하루를 충분히 살아냅니다.
영화는 그 모습을 통해 행복을 거창한 목표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행복이란 어쩌면 이미 지나가고 있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 잊고 있던 과거가 다시 문을 두드립니다
그렇다고 히라야마의 삶이 완벽하게 평온한 것만은 아닙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과거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특히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조카가 등장하면서 지금의 히라야마와 과거의 히라야마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됩니다.
히라야마가 지금의 삶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몰라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이 지금의 삶을 선택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은 집과 오래된 자동차, 반복되는 일상은 가난하거나 부족한 삶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남기고 나머지를 내려놓은 사람의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가족과 과거가 등장하는 순간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히라야마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평온한 일상이 완전히 다른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가 지금의 나를 계속 결정해야 하는가.
남들이 생각하는 좋은 삶과 내가 실제로 원하는 삶이 다르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히라야마는 그 질문에 말로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하루를 통해 보여줍니다.
아무리 평범해 보여도 내가 선택한 삶이라면 그 안에서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히라야마의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삶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기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점에서 히라야마는 아주 조용하지만 꽤 단단한 인물입니다.
★완벽한 하루란 무엇일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퍼펙트 데이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히라야마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차를 운전하고, 음악을 듣고, 다시 일상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관객은 이제 그 하루를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의 과거를 조금 알게 되었고, 그가 무엇을 포기했으며 무엇을 선택했는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하루가 더 이상 평범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히라야마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동시에 지나갑니다.
기쁨처럼 보이기도 하고, 슬픔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읽어내게 만드는 장면도 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감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히라야마는 자신의 하루를 계속 살아갑니다.
아마 이 영화가 말하는 ‘퍼펙트 데이즈’는 완벽하게 행복한 날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힘든 일이 없고, 후회도 없고,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하루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으며, 외로운 순간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자신의 하루를 받아들이는 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날을 기다립니다.
여행을 가는 날, 좋은 일이 생기는 날, 무언가를 이루는 날을 기다리면서 지금의 평범한 날을 지나쳐버립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실제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일지도 모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바로 그 이야기를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전합니다.
화려한 사건도 없고 거대한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이상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아마 우리가 평소 너무 당연하게 지나쳤던 하루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들었던 음악 한 곡,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처럼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하루는 정말 평범하기만 한 하루일까.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던 완벽한 하루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개인 평점은 ⭐⭐⭐⭐½ 4.5 / 5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