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에드워드 버거
개봉|2024년
장르|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러닝타임|120분
주연|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개인 평점|⭐⭐⭐⭐½ 4.5 / 5
교황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 한다.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콘클라베를 시작하고, 그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추기경 로렌스다.
문제는 로렌스가 새 교황을 뽑는 일을 단순한 절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회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방향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추기경들도 서로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후보가 있는가 하면 변화를 주장하는 후보도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뒤에서는 자신의 표를 계산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교황을 뽑는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투표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후보들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정보가 등장하면서 이미 굳어졌다고 생각했던 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로렌스 역시 이 선거에서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라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콘클라베》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 교황을 뽑는 자리는 사실 거대한 정치판이다
콘클라베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에서 진행된다.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고 외부와 자유롭게 연락할 수도 없다.
수백 명이 모인 정치 집회와는 정반대로 아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히려 정치판과 닮아 있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계산하고, 특정 후보가 유리해지면 다른 후보들이 연합한다.
투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유력했던 후보가 흔들리면 새로운 인물이 떠오른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교황 선출이라는 종교적인 사건을 상당히 현실적인 권력의 문제로 바꿔놓는다.
누군가는 교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모두 교회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개인적인 욕망과 야심도 섞여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후보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워진다.
저 사람이 정말 교회를 위해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교황이 되기 위해 말하는 것인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
로렌스가 힘들어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누구보다 공정하게 선거를 진행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점점 어려워진다.
✦ 유력한 후보들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영화의 긴장감은 후보들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올라간다.
처음에는 꽤 명확해 보인다.
어떤 후보는 강력한 지도자로 보이고, 어떤 후보는 진보적인 인물로 보인다. 또 다른 후보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수록 처음의 인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과거의 발언과 행동이 다시 문제가 되고, 후보들의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누군가의 비밀이 선거에 이용되면서 콘클라베는 더 이상 단순한 투표가 아니게 된다.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면 자신에게 유리해질 수 있지만, 동시에 교회 전체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숨기자니 그 사람을 교황으로 뽑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고민된다.
영화는 이 상황을 통해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지도자가 완벽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과거를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이 하나 따라온다.
좋은 사람이 교황이 되는 것과 좋은 교황이 되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이런 질문들이 계속 쌓이면서 영화는 단순한 범죄나 반전 스릴러에서 벗어난다.
✦ 로렌스는 왜 이 선거에서 점점 흔들리는가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로렌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교황이 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은 그런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로렌스를 새로운 후보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로렌스 역시 자신의 신앙과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정말 교회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고민한다.
그래서 로렌스의 갈등은 다른 후보들과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누가 교황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로렌스는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 차이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간다.
랄프 파인즈는 이런 인물을 큰 동작이나 감정적인 연기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감정을 표정과 침묵으로 보여준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잠시 멈추는 순간, 혼자 남아 생각하는 장면에서 로렌스가 얼마나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큰 사건보다 인물이 잠시 침묵하는 순간이 더 긴장된다.
✦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선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콘클라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선거가 진행될수록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후보들은 이미 자신이 누구를 지지할지 계산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서 판이 계속 흔들린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한 사람의 정체와 과거를 둘러싼 의문이 커진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정말 사실일까.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실은 단순히 “범인은 누구였다” 같은 반전과는 결이 다르다.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과 사건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반전에 가깝다.
그래서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초반의 대사와 행동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믿음’에 대한 영화의 질문이다
《콘클라베》는 종교를 소재로 하지만 종교를 설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확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영화 속 추기경들도 결국 같은 문제 앞에 놓인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개인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정말 교회에 필요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 질문 때문에 영화가 단순한 교황 선출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우리는 결국 비슷한 판단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인지.
결국 사람을 선택하는 일에는 언제나 감정과 욕망이 끼어든다.
《콘클라베》는 그 복잡한 인간의 모습을 아주 조용한 공간 안에 밀어 넣는다.
✦ 마지막 장면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단순히 놀라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결말을 알고 나면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로렌스의 고민이 다시 보인다.
처음에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신중한 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그의 고민이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사람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
그게 좋았다.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결말이었다면 영화가 끝나는 순간 생각도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콘클라베》는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앞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반전 자체보다 반전 이후에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져 보이는지가 더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 《콘클라베》를 보고 나서
처음에는 교황 선출이라는 소재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시작하면 종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크게 어렵지 않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교리보다 사람이고, 종교보다 권력이며, 신앙보다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가 끝까지 관객을 긴장시키면서도 단순한 반전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교황이 될 것인지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오히려 “사람을 믿는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콘클라베》의 가장 큰 장점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대화하고 투표하는 것이 전부인데도 이상하게 긴장감이 있다.
큰 액션도 없고 화려한 장면도 많지 않지만, 사람의 말 한마디와 숨겨진 비밀 하나가 판을 뒤집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정치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스포일러를 모르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콘클라베》는 결국 교황을 뽑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무엇을 믿고 있는지 되묻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