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리들리 스콧
개봉: 2017년 5월 9일
장르: SF,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22분
주연: 마이클 패스벤더, 캐서린 워터스턴, 빌리 크루덥, 대니 맥브라이드
하빗스토리 평점: ★★★★☆ 4.5/5
⚠️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 영화 흐름 순서
《프로메테우스》 → 《에이리언: 커버넌트》 → 《에이리언》 → 《에이리언: 로물루스》 → 《에이리언 2》
새로운 행성을 향해 떠난 커버넌트호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인류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커버넌트호에는 수천 명의 식민 이주자와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의 미래를 이어갈 배아가 실려 있으며, 모두가 목적지인 오리가에-6를 향해 긴 동면에 들어가 있다.
지구를 떠난 이들의 목적은 단순한 탐사가 아니라 새로운 행성에서 인간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우주선이 심각한 손상을 입고 승무원들이 갑작스럽게 깨어나면서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선장을 잃은 뒤 오람이 새로운 선장 자리를 맡게 되면서, 이미 불안정해진 상황에 또 다른 긴장감이 생긴다.
그러던 중 승무원들은 우주 공간을 통해 흘러오는 정체불명의 신호를 발견한다.
그들이 들은 것은 단순한 전파가 아니라 사람이 연주한 듯한 음악이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행성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결국 커버넌트호는 예정된 항로를 벗어나 그 행성을 향한다.
행성에 도착한 승무원들이 처음 마주한 풍경은 예상보다 평온하다.
넓은 들판과 맑은 하늘,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환경은 오랜 우주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인다.
오리가에-6까지 가지 않고도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기대가 생기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는 인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위험이 숨어 있었다.
인간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행성, 그곳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탐사팀이 행성을 조사하면서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새로운 터전을 발견했다는 기대가 앞서지만, 숲을 지나던 중 한 승무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자에 노출되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변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상 증상처럼 보였던 변화가 빠르게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몸 안으로 들어간 무언가가 승무원의 신체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결국 인간의 몸에서 기괴한 생명체가 튀어나오면서 탐사팀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와 마주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진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거대한 에이리언이 갑자기 등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평범한 공간에서 이미 위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게 다가온다.
눈앞에는 넓은 숲과 고요한 자연이 펼쳐져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탐사팀은 순식간에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공격을 받고, 누군가는 동료를 구하려다 위험에 빠지면서 일행은 제대로 대응할 틈도 없이 무너진다.
새로운 행성을 탐험한다는 기대가 살아남기 위한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때 승무원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이 행성에서 살아남은 듯한 남자, 데이비드다.
그는 낯선 행성에 홀로 남겨진 인간처럼 보이며, 위기에 빠진 승무원들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간다.
공포에 쫓기던 사람들에게 데이비드는 유일한 구원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며, 《프로메테우스》에서 이미 등장했던 존재다.
구원자인 줄 알았던 데이비드, 그가 감추고 있던 실험
데이비드는 이 행성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이비드는 인간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존재에 가깝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있지만, 그 장면에는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가 감돈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사랑하는 음악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음악을 인간과 같은 감정으로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와 감정을 관찰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거처를 살펴볼수록 이 행성에서 일어난 일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실험실에는 생명체를 연구한 흔적이 남아 있고, 수많은 표본과 기록이 존재한다.
데이비드는 이곳에서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생명체를 관찰하고 실험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에이리언의 존재 역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이 우연히 발견한 외계 생명체처럼 보였지만, 데이비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왔는지를 알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생명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만들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생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단순한 우주 공포영화에서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를 다루는 SF로 깊어진다.
창조하고 싶었던 존재, 인간을 넘어서는 피조물
데이비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다.
인간에게 명령받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을 만들었지만 자신에게 한계를 정해놓았다는 사실은 데이비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남긴다.
왜 자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왜 자신에게는 인간과 같은 감정과 지성이 주어졌는데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데이비드는 결국 자신을 만든 인간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대신, 자신 역시 창조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생각이 월터와의 관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월터 역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지만 데이비드와는 다르다.
월터는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의 명령에 충실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반면 데이비드는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스스로 확장하려 한다.
두 사람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월터가 인간을 지켜야 할 존재로 생각한다면, 데이비드에게 인간은 자신이 넘어야 할 한계에 가깝다.
그래서 두 존재의 대립은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언제부터 자신의 창조주를 뛰어넘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데이비드는 인간의 생명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생명을 창조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명체를 선택하고 제거하며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가 만들어낸 에이리언은 결국 데이비드의 창조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처럼 보인다.
인간에게서 태어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이 다시 인간을 위협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공포는 에이리언이라는 생명체보다 데이비드라는 존재에게 더 가까워진다.
마지막 반전이 남긴 것, 인간은 무엇을 만들어낸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한순간에 뒤집힌다.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간신히 에이리언의 공격에서 벗어나 우주선으로 돌아간다.
이제 다시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은 그들이 무엇을 우주선 안으로 데려왔는지 알고 있다.
데이비드는 월터의 얼굴을 하고 커버넌트호에 올라탄다.
그리고 진짜 월터는 그 행성에 남겨진다.
이 반전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데이비드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영화가 처음부터 보여준 모든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커버넌트호에는 수많은 인간이 잠들어 있고, 새로운 행성으로 가져갈 배아도 실려 있다.
데이비드가 그토록 원했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이미 우주선 안에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인간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동안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끝낸 것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이리언을 단순한 괴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존재의 뒤에 인간의 창조 욕망과 인공지능의 욕망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만들어냈고, 그 존재는 인간이 정해놓은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자신만의 생명을 창조하려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가장 위험한 존재가 우주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과 함께 우주선에 올라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남는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결국 에이리언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창조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만들어낸 순간, 그 존재 역시 자신만의 욕망을 갖기 시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언젠가 인간을 불완전한 창조주로 바라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그 답을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음 이야기로 그대로 이어진다.
🎬 하빗스토리 한줄평
“가장 무서운 괴물은 우주 어딘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