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페데 알바레즈
개봉: 2024년 8월 16일
장르: SF,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9분
주연: 케일리 스패니, 데이비드 존슨, 아치 르노, 이사벨라 메르세드
하빗스토리 평점: ★★★★☆ 4.5/5
⚠️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 영화 흐름 순서
《프로메테우스》 → 《에이리언: 커버넌트》 → 《에이리언》 → 《에이리언: 로물루스》 → 《에이리언 2》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바로 다음 이야기가 아니다.
《커버넌트》보다 훨씬 뒤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원작《에이리언》이후의 이야기이다.
앞선 시리즈가 에이리언의 기원과 창조에 가까이 다가갔다면, 《로물루스》는 이미 인간이 에이리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시대에서 다시 그 공포와 마주하는 이야기이다.
버려진 행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젊은이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시작은 거대한 우주선이나 미지의 행성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식민지 행성의 답답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레인은 잭슨스 스타라는 식민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기대했던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정해진 삶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레인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단순히 모험을 원해서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남동생 앤디가 있고, 앤디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공지능이다.
레인에게 앤디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가족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식민지의 기업은 그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장비처럼 취급한다.
그래서 레인은 앤디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친구 타일러와 동료들이 버려진 우주정거장에 접근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곳에 남아 있는 냉동 캡슐을 이용하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우주정거장이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곳이라는 사실이다.
우주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시설이 단순히 낡은 건물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전원이 끊긴 공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사람이 없고, 남겨진 기록만으로 과거를 추측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떠나기로 한다.
레인과 일행에게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지금의 삶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의 이름은 로물루스다.
아무도 없는 우주정거장, 그곳에서 발견한 것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일행은 처음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거대한 시설은 텅 비어 있고, 내부에는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만 남아 있다.
그들이 찾아야 할 것은 분명했지만 정거장의 구조와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리고 정거장을 조사하던 중 그들은 이상한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래된 연구시설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거장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은 이곳에서 단순한 사고 이상의 일이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관객에게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알려주지 않는다.
일행이 하나씩 시설을 확인할 때마다 과거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고, 그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아갈수록 정거장에 대한 불안감도 커진다.
결국 그들은 에이리언과 관련된 연구 자료를 발견한다.
이곳에서는 에이리언을 연구하고 있었고, 인간은 그 생명체의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질까지 연구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연구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정거장에 사람이 없는 이유도 서서히 밝혀진다.
누군가 떠난 것이 아니라,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그제야 레인과 일행은 자신들이 폐쇄된 우주정거장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깨닫게 된다.
그들이 찾으러 온 것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였지만, 이곳에는 이미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번 깨어난 에이리언은 다시 멈추지 않는다
에이리언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부터 거대한 괴물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면서 긴장감을 쌓아간다.
좁은 통로와 어두운 연구실, 움직임을 감지하기 어려운 공간은 일행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에이리언의 가장 무서운 점은 힘이 세다는 것만이 아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공격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 명이 사라지고, 또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서 일행은 조금씩 흩어진다.
처음에는 모두가 함께 움직였지만 공포가 커질수록 각자의 판단이 달라지고, 결국 서로를 보호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레인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레인이 특별한 이유는 처음부터 강한 전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잘못된 판단을 하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앤디를 지키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앤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분석하지만, 레인에게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앤디의 존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특히 앤디의 시스템이 바뀌면서 그의 행동이 달라지는 과정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지만, 어떤 명령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로물루스》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에이리언만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기술 역시 언제든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질, 또 다른 공포가 되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정거장에서 진행되었던 연구의 목적이 드러난다.
인간은 에이리언에게서 얻은 물질을 이용해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물질은 인간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질병과 노화, 인간의 생존 능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새로운 생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데이비드가 생명을 창조하려 했다면, 《로물루스》에서는 인간이 에이리언의 생명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가려 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생명체와 힘을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예상보다 훨씬 끔찍하다.
레인 일행은 이제 단순히 에이리언에게서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주정거장의 시스템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고, 서로를 지키면서 탈출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앤디 역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새로운 시스템이 요구하는 판단 사이에서 앤디는 점점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결국 레인에게 앤디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가족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가족이 된 존재이고, 레인은 그런 앤디를 끝까지 인간처럼 대하려 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에이리언의 공포와는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낸다.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은 레인이 우주정거장을 탈출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정거장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며, 남아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레인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를 두고 혼자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앤디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에이리언과 맞서게 된다.
하지만 탈출 직전 레인은 또 다른 생명체와 마주하게 된다.
인간과 에이리언의 특징이 뒤섞인 끔찍한 존재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 존재는 단순히 또 하나의 에이리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간이 에이리언의 생명력을 이용하려 했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레인은 간신히 살아남아 우주 공간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적어도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커버넌트》와의 연결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커버넌트》에서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 했고,
《로물루스》에서는 인간이 에이리언의 생명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두 영화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이유로 에이리언의 힘을 이용하려 하지만 결국 공통된 문제에 부딪힌다.
생명을 만들어내거나 변화시키는 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단순히 원작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폐쇄된 우주정거장이라는 공간에서 원작의 공포를 다시 끌어오면서도, 인간이 생명과 기술을 이용하려는 욕망이라는 시리즈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레인에게 돌아간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두려운 상황에서도 어떤 존재를 끝까지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레인의 마지막 선택은 《로물루스》가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다.
🎬 하빗스토리 한줄평
“에이리언보다 무서운 것은 생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욕망이며,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