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드니 빌뇌브
개봉|2015년 9월 18일
장르|범죄 · 스릴러 · 액션
러닝타임|121분
주연|에밀리 블런트 · 베니치오 델 토로 · 조시 브롤린
개인 평점|★★★★☆ 4.5/5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 FBI 요원의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갈수록 단순한 범죄 수사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것과 악을 제거하는 것 중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주인공 케이트 메이서에게도 처음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범죄자를 잡는 것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수사 과정에서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멕시코 국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밀 작전에 참여하면서 케이트가 믿었던 기준은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케이트는 자신이 범죄자를 쫓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전이 사실은 더 거대한 목적을 위해 설계된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시작부터 이상하다|벽 뒤에서 발견된 시신들
영화는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가 애리조나에서 마약 카르텔과 관련된 주택을 수색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팀원들과 함께 집 안을 수색하던 중 벽 뒤에서 끔찍한 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된다.
단순한 마약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수사가 훨씬 잔혹한 범죄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부비트랩까지 발견되고, 수색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목숨을 잃는다.
케이트는 사건의 규모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강한 의지를 가진 FBI 요원이지만 무모하게 행동하는 인물은 아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라도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상관의 추천으로 새로운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도 자신이 더 큰 범죄 조직을 상대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케이트는 국방부 고문으로 소개되는 맷 그레이버를 만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한 명 더 있다. 그가 바로 알레한드로 길릭이다.
알레한드로는 자신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전에서 항상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공식적으로 설명되는 임무와 실제 작전 사이에는 처음부터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 후아레스로 향하다|케이트가 모르는 작전의 진짜 목적
맷이 이끄는 팀의 목표는 멕시코의 마약왕과 연결된 인물 마누엘 디아즈를 압박하는 것이다. 케이트는 디아즈를 체포하고 그의 뒤에 있는 더 큰 조직을 무너뜨리는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전이 시작되면서 이상한 장면들이 계속 나타난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디아즈가 멕시코로 돌아갈 움직임을 보이자 오히려 팀은 그것을 반긴다.
케이트는 의문을 품는다. 미국 정부의 요원들이 왜 자신들의 관할권 밖인 멕시코로 범죄자를 따라가려는 것일까. 맷은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케이트는 점점 자신이 작전의 전체 그림을 알지 못한 채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작전에서 빠지지 않는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직접 현장을 확인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카리오》는 케이트가 생각했던 범죄 수사 영화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 국경의 긴장감|법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차량 작전이다. 팀은 후아레스에서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량 행렬을 이루고 이동한다.
문제는 국경 근처에서 적의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차량이 막힌 도로에 멈추자 주변의 모든 자동차가 잠재적인 위협처럼 보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총격이 시작된다. 케이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직접 뛰어들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케이트가 단순히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수사의 규칙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범죄자는 체포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 팀에게 범죄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반드시 체포일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먼저 제거하고 나중에 이유를 찾는다. 케이트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군인이 아니라 FBI 요원이다.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법에 따라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알레한드로|가장 위험한 사람은 누구인가
케이트가 점점 의심하는 인물이 바로 알레한드로다. 그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FBI 요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감정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잔혹하게 행동한다.
알레한드로의 정체도 조금씩 드러난다. 그는 원래 멕시코에서 검사로 일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마약 카르텔과의 싸움 속에서 가족을 잃었고, 그 사건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가 이 작전에 참여한 이유 역시 단순히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수가 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하지만 케이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그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남자가 하나의 작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그래서 알레한드로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생긴다. 그가 아군인지 적인지조차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 터널 작전|케이트가 진실에 가까워지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팀은 마약이 이동하는 비밀 터널을 찾아낸다. 케이트 역시 작전에 참여해 국경 아래의 터널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작전의 목적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알레한드로는 터널 반대편에서 마약 운반에 관여한 멕시코 경찰관 실비오를 붙잡는다. 케이트는 그를 체포하려고 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케이트를 향해 총을 쏜다. 방탄복이 총알을 막아주었지만, 이것은 케이트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자신이 속한 팀의 사람이 자신에게 총을 쐈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맷이 그 행동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케이트는 확신한다. 이 작전은 자신이 생각했던 FBI 식 수사가 아니다.
✦ 작전의 진짜 목적|디아즈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케이트가 맷에게 진실을 요구하자 마침내 작전의 본래 목적이 드러난다. 디아즈를 체포하는 것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디아즈의 마약 사업을 계속 압박해 그가 멕시코로 돌아가도록 만들고, 그를 통해 더 거대한 카르텔의 수장 파우스토 알라르콘에게 접근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큰 계산이 있었다.
맷은 과거 메데인 카르텔처럼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마약 거래를 장악했던 시기를 이야기한다. 여러 조직이 경쟁하며 무질서하게 싸우는 것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시장을 장악하는 편이 오히려 통제하기 쉽다는 논리다.
즉, 미국 정부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마약 카르텔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통제할 수 있는 질서를 다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레한드로가 이용되고 있었다. 이 순간부터 영화의 제목인 ‘시카리오’가 가진 의미도 달라진다.
✦ 복수의 시작|알레한드로가 진짜 원하는 것
알레한드로의 개인적인 목적은 더욱 잔혹하다. 파우스토 알라르콘은 과거 알레한드로의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알레한드로가 지금까지 이 작전에 참여한 이유는 결국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맷과 미국 정부는 카르텔의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해 알레한드로를 이용하고,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그들의 힘을 이용한다.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한동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시카리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오히려 알레한드로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단순한 악당도 아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였지만 복수를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었고, 이제는 그 괴물의 힘을 정부조차 필요로 한다.
✦ 마지막 작전|법이 아닌 복수로 끝나는 전쟁
알레한드로는 실비오를 이용해 디아즈에게 접근하고, 결국 알라르콘이 있는 곳까지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벌이는 일은 더 이상 수사라고 부르기 어렵다. 디아즈를 죽이고 경호원들을 제거한 뒤 마침내 알라르콘과 마주한다.
알라르콘은 자신 역시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며 알레한드로에게 말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이 순간은 법의 심판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는 알라르콘과 그의 가족까지 살해한다. 그리고 다시 케이트 앞에 나타난다. 이 장면은 영화의 핵심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케이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이 불법적인 작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작전의 결과로 범죄 조직의 수장은 제거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의일까. 아니면 단지 더 강한 힘이 약한 쪽을 제거한 것일까.
✦ 마지막 장면|케이트가 총을 들었지만 쏘지 못한 이유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작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강요한다. 케이트는 그에게 총을 겨눈다.
지금까지 영화 전체를 통틀어 케이트가 처음으로 알레한드로를 직접 죽일 수 있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케이트가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지켜야 할 기준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인물이다.
알레한드로를 죽이는 순간 그녀 역시 자신이 비판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그래서 케이트는 총을 내린다.
그리고 알레한드로는 그녀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법과 질서가 아직 존재하는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라고.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그런 기준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시카리오》가 무서운 이유|악을 없애는 방식도 악이 될 수 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단순히 마약 카르텔을 소재로 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면 영화의 절반만 본 셈이다.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법과 정의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이다.
케이트는 처음부터 정의로운 세계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범죄자를 체포하고 증거를 확보하고 법정에서 처벌받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들어간 세계에서는 그런 방식만으로는 카르텔을 상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알레한드로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 누가 범죄자이고 누가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인지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이다. 카르텔은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 역시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알레한드로는 가족을 잃었다. 그래서 복수를 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과정에서 그 역시 자신이 증오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결국 영화는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무엇을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화려한 액션을 앞세운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긴장감을 천천히 쌓는다. 사막과 국경, 어두운 터널, 차량 행렬처럼 답답하고 폐쇄적인 공간을 활용해 관객 역시 케이트와 같은 위치에 서게 만든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알 수 없고, 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알레한드로가 움직일 때마다 불안하고, 맷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할 때마다 더 불편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처음부터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케이트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다. 알레한드로처럼 냉혹하지도 않고, 맷처럼 상황 전체를 계산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케이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카리오》는 범죄자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묻는 영화가 아니다. 범죄와 싸우기 위해 우리가 어디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가. 그리고 그 선을 한 번 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질문이 오래 남는다.
법을 지키며 악과 싸우려던 한 사람이 결국 법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시카리오》는 단순한 범죄 액션을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