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존 카니
개봉일 2014년 8월 13일
장르 드라마, 음악, 로맨스
러닝타임 104분
주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테인펠드
개인 평점 ⭐⭐⭐⭐⭐ 5 / 5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도, 앞으로의 계획도, 내가 좋아했던 사람도 한꺼번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긴 어게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그레타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 연인 데이브와 헤어지고, 댄은 자신이 만든 음반사에서 쫓겨난 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한 사람은 사랑을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일과 가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던 두 사람이 뉴욕의 작은 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 곡의 노래가 두 사람의 인생을 조금씩 바꿔놓습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서로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을 다시 찾게 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비긴 어게인》은 흔한 로맨스 영화와 조금 다릅니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 사랑을 잃은 두 사람이 음악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레타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오랫동안 연인 데이브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왔고, 그의 성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처음에는 둘이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데이브가 자신의 노래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유명해진 데이브에게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그레타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갑니다.
결국 데이브의 외도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레타에게 이별은 단순히 연인을 잃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만들어온 음악과 함께했던 미래까지 한꺼번에 무너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그레타가 친구의 부탁으로 작은 바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관객도 거의 없고, 무대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댄이 있습니다.
댄은 한때 성공적인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술에 의지하고, 딸과도 관계가 멀어졌으며, 자신이 설립한 음반사에서도 쫓겨난 상태입니다.
그런 댄에게 그레타의 노래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 듣는 순간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댄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음악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댄은 그레타에게 음반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스튜디오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뉴욕의 거리에서 직접 앨범을 만들기로 합니다.
지하철역과 거리, 건물 옥상과 공원에서 음악을 녹음합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방식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스튜디오가 아니라 도시의 소음까지 음악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들의 삶까지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 새로운 시작, 새로운 음악
《비긴 어게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일반적인 음악 영화라면 유명한 프로듀서와 좋은 스튜디오, 완벽한 장비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반대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댄과 그레타는 뉴욕 한복판으로 나갑니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 자동차 소리까지 음악에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그 과정에서 그레타의 음악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상처받은 사람처럼 노래하던 그레타가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음악 산업에서 성공했던 그는 자신의 실패 때문에 음악 자체를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레타와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 다시 자신이 왜 음악을 좋아했는지를 떠올립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부분입니다.
둘은 서로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상대방이 가진 것을 발견하게 도와줍니다.
댄은 그레타에게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고, 그레타는 댄에게 음악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 다르게 흘러갑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순간이 있지만, 그 감정이 반드시 연애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비긴 어게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와 실패를 그대로 가진 채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레타에게 음악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되고, 댄에게는 잃어버렸던 삶을 되찾는 방법이 됩니다.
✦ 헤어진 사람을 잊는 것보다 나를 다시 찾는 일이 먼저인
처음 영화를 보면 《비긴 어게인》은 그레타와 데이브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오히려 데이브와의 이별은 이야기의 시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레타는 데이브와 함께하면서 음악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데이브의 성공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데이브가 유명해지면서 그레타의 음악도 그의 음악 뒤에 가려집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데이브의 성공을 어떻게 도울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별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레타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댄과의 만남도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댄은 그레타에게 새로운 연인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레타가 자신이 가진 음악을 다시 믿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레타 역시 댄에게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한때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던 댄은 실패 이후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레타와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 자신이 아직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랑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레타와 댄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억지로 로맨스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이 모두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이전의 사랑을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레타는 데이브를 잊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브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자신을 인정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 결국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그레타는 더 이상 처음의 그레타가 아닙니다.
데이브의 성공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를 고민하던 사람에서, 자신의 음악과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댄 역시 달라집니다.
한때 성공했던 과거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두 사람 모두 거창한 성공을 이루면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레타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댄이 다시 엄청난 음반 제작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두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말하는 성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너무 쉽게 숫자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지를 성공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좋아할 수 있는 것.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한 번의 실패 때문에 앞으로의 삶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충분히 성공적인 삶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레타는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음악을 시작합니다.
댄 역시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 동안 서로의 삶에 아주 중요한 흔적을 남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나면 사랑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집니다.
사랑이 반드시 평생 함께하는 것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사랑이 끝난 뒤에야 내가 누구였는지를 다시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 인생에 오래 머물지 않더라도,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음악도, 뉴욕의 풍경도, 그레타와 댄의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무언가를 잃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오래 준비했던 꿈일 수도 있고, 한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향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어떤 끝은 다른 시작의 입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비긴 어게인》은 바로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완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성공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패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Begin Again.
다시 시작하는 것.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가지고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비긴 어게인》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인생에는 여전히 좋은 장면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평점은 ⭐⭐⭐⭐⭐ 5 / 5입니다.